물잎새
심술 본문
허여멀건 두 눈에 그늘이 졌다. 훑듯 스쳐 지나간 바람이 머리칼 하나를 끌어내린 것도 모르고 나무에 기댄 몸은 짧은 머뭇거림조차 없었다.
벌새가 날다 지쳐 떨어진다. 딸려오는 거뭇함은 먼지인 줄 알았으나 낡은 낙엽인 탓으로 바람도 쓸지 않고 빗겨나가는 죽은 것들이었다. 허나 낙엽은 조그만 짐승을 따스히 덮었다. 옅은 숨을 따라 천천히 오르내리는 이불은 퍼석한 가을빛. 고요한 숨죽임이 바람을 타고 밀려나간다.
"......."
사내의 두 눈은 쉴 새 없이 번뜩였다. 빛이 들어오다 꺼진다. 숨 한 번 뱉는 차에 바삐 반복되는 모양이, 앞으로도 뒤로도 수십 번은 왔다 갔다 할 모양이었다. 실 한참을 앉아있었으나, 사내는 무덤덤하게 벌새를 바라볼 뿐이었다.
쿨럭, 속으로 묻히는 기침 소리. 그리고 배어 나온 핏자국에 사내는 한숨을 옅게 내쉬었다.
“왜 그리 심술이냐.”
툭 얹힌 손은 무언가를 쓰다듬듯 둥글게 빗겨 내렸다. 그 뒤로 무언가를 속삭이는 듯했으나, 실로 아무도 없는 들판의 이야기인지라ㅡ 느릿하게 떠내려가는 구름 아래 바람이 거닐고, 바람이 거니는 억새밭은 짐승과 사람을 가리울었다. 아찔하게 높을 하늘은 잠시 눈을 감았다 뜨면 둥글게 굽어 웅크린 짐승같이 모든 것을 감싸 안고...
누군가 들으랴, 누군가 흘리랴.
갈대 너머로 서서히 자취를 감추어드는 이야깃소리마저도 크다는 듯
나그네는 소리 없는 발걸음을 옮겼다.
-
어느 때 어딘가로 정처 없이 떠돌고 있을 날의 한 모습. 여동생의 일이 한참 지나고 태유에게 유독 따르려는 어린아이(귀)가 하나 생기는데, 태유는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귀들에게 다가가며 그 걸음 안에는 제 몸에 대한 염려는 소지 한 마디조차 없음을 깨닫고 심술을 부리지 않을까 한다. 어린아이니까, 심술.
그 심술이란 일부러 정신없을 정도로 빠르게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것. 내상을 입을 정도면 어지간히도 일을 벌여놓았다.
그 아이와의 관계는 다른 귀들에 비해 상당히 가까워지지만, 태유가 너무 늦지는 않게 떠나보낸다. 조건 건드리는 일 없이 잘 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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